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년전쟁/제4기 (1432-1453) (문단 편집) === 오를레앙 칙령 (1439) === [[파일:hyw1439.png |width=850]] 1439년 7월 20일, 아르튀르 드 리슈몽이 지휘하는 프랑스군 5000명이 모를 포위했다. 9월 15일, 아성에서 농성하던 주둔군이 결국 항복하면서 모 시가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같은 시기, 잉글랜드는 부르고뉴와 평화 조약을 맺고 양모 수출을 재개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평화 협상은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었다. 11월 초, 리슈몽을 비롯한 여러 지휘관들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메인에서 공세를 개시해 생트슈잔을 비롯한 많은 거점을 탈환했다. 11월 2일, 오를레앙 칙령이 발표되었다. 이 칙령에서 샤를 7세는 군대에 규율을 확립하고 용병 도적단의 약탈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용병들과 직업군인을 국왕군에 통합하고 귀족들의 군권을 제한했다. 11월 30일, 프랑스군이 아브랑슈를 포위했다. 하지만 도싯 백작 에드먼드 보퍼트가 이끄는 구원군의 기습으로 포위군은 수많은 보급품과 대포를 잃고 패주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